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표현의 자유 (문단 편집) === 역사적 근거 === 일찍이 동양의 철학자인 [[한비자]]는 "현명한 군주는 신하의 충성[* 다만 이는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충성의 개념과 다른 것으로 오늘날로 따지면 신의성실의 원칙으로 번역된다.]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라고 말하여, 양심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 등 국가의 권력으로 통제하기 힘든 부분을 행정력을 투입하여 과도하게 규제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이는 각 나라가 [[배틀로얄]]을 펼치던 [[춘추전국시대]]의 시대상을 반영한 것으로, 생산력이 낮고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전 국가가 대동단결하여야 했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한비자의 스승인 [[순자]]를 비롯한 여러 사상가들이, -통제를 통해 얻는 이익이나 피해자의 구제가 극히 미미함에도 불구하고- 신하나 민중의 혀와 머리를 통제하는 데에 국가의 행정력이 낭비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사상범들을 일부만 규제해서 일벌백계의 효과를 누릴 수 있지 않냐 하는 주장도 있겠지만 애초에 한비자가 주장했던 법치주의나 현대의 근대 공화정에서 사법조직의 형평성도 중요한 영역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여전히 논란거리가 많다.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표방하는 표현의 자유는 [[존 로크|로크(Locke 1632~1704)]]를 비롯한 근대 서양의 [[자유주의|자유주의자]]들로부터 유래한다. 로크가 살던 17세기의 영국에서는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상업에 종사하던 중산층들이 자신들을 억압하고 수탈하던 국왕과 고위 귀족들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권리를 찾으려고 하고 있었다. 결국 이러한 충돌의 결과로 [[명예혁명|명예혁명(1688)]]이 발생하고 의회 민주주의가 들어서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산층 지식인들은 고귀한 혈통이 주는 권위를 부정하고 누구나 적절한 교육을 받으면 덕성을 갖춘 지성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많은 지성인들이 참여하는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정책이 결정될 수 있도록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후 영국의 최신 사상을 열심히 수입했던[* 당시 영국은 이른바 [[시민 혁명]]을 거치면서 시민 계급이 정치적 지위와 자유를 획득한 상황이었기에, 툭하면 저서의 내용이 높으신 분들의 비위를 거슬렸다는 이유로 투옥되거나 추방되곤 했던 유럽 대륙의 계몽주의자들이 경외하는 대상이었다.] 프랑스의 [[볼테르|볼테르(Voltaire 1694~1778)]]와 같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표현의 자유를 다른 모든 자유를 보장하는 근간으로 보았다. 이러한 사회적‧사상적 흐름의 영향을 받아 발생한 [[미국 독립 전쟁|미국 독립 전쟁(1775~1783)]]과 [[프랑스 혁명|프랑스 혁명(1789~1799)]]을 거치면서 표현의 자유는 박탈할 수 없고 양도할 수도 없는 핵심적인 인권의 하나로 천명되었다. 자유주의자들이 무제한적인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국가의 전복을 선동하거나, 특정 집단의 사람들을 모두 살해하자고 설득하려는 경우에는 당연히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의 제한을 정당화하는 학설 중에 대표적인 것이 [[존 스튜어트 밀|밀(Mill 1806~1873)]]이 제안한 '위해 원칙(harm principle)'으로, '''개인의 자유는 타인에게 해가 될 경우에 한해서 제한될 수 있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누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권리를 가진 심판자가 될 것인가'라는 점이다. 만약 정부나 특정 정치 집단이 심판자가 될 경우에 당연히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판결을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왕의 실책을 비판하는 자들을 잡아서 고문하고 죽일 수 있었던 전근대 왕정국가들이나 현재 집권당에 의한 사상 검열이 일상화되어 있는 중국,[* 예를 들어 [[천안문 사태]], [[광복홍콩 시대혁명|프리 홍콩]]에 대한 검열] 북한과 같은 국가가 그 예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다수에게 또는 다수의견을 대변하는 사회활동가들에게 심판자의 권리를 줄 경우에도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17세기의 [[갈릴레오]]가 이탈리아의 대학에서 지동설을 설명하는 강연을 하려고 할 때 [[가톨릭]] 성직자들이 대학에 연락하여 강연을 취소시키거나, 현대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에게도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주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에게 [[탈레반]] 지지자들이 몰려와서 행패를 부리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려는 사람들은 사회 구성원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반면에, 당시 상황에서는 갈릴레오나 여성인권 운동가들이 오히려 반사회적 언행을 일삼는 선동가가 된다. 하지만 현대 한국인의 관점에서 이렇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옳다고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사실 [[고전적 자유주의|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라는 대원칙을 만들었을 뿐, 심판자에 대해서 시공간을 초월하여 항상 성립하는 구체적 규칙을 세우려 하지 않았다. 대신에 이들은 덕성을 갖춘 지성인들이 가진 지적 활동의 힘을 믿었으며, 결국 사람들이 허무맹랑하거나 반사회적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합리적 규칙도 지식인들의 토론을 통해 상황에 맞추어 수립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